센터,농협중앙회비정규직지부에게 후원기금 전달하다.
   관리자    201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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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센터 황원래 이사장은 2012년 12월 11일 오후 4시 센터사무실에서 사무연대노동조합 농협중앙회비정규직지부 배삼영위원장에게 투쟁후원기금 백이십만원을 전달하였다.

배삼영위원장은 2005년 농협중앙회 비정규직 노조위원장이 되어 2008년 해고되었으며 5년째 복직투쟁과 함께 비정규노조운동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우리 센터에 사무금융노조의 동지들이 비정규직 투쟁 연대지원금을 전달해 옴에 따라 기증식을 갖게 된 것이다 .  

배삼영 위원장은 한국노동복지센터를 통해 지원받은 투쟁지원금으로 농협중앙회에 있는 5500여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복직투쟁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하겠다는 뜻과 함께 연대지원금을 보내준 동지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해 달라고 하였다.

우리 센터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배삼영위원장의 조속한 복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고용안정이 이루어 지길 바란다 

 

<좌로부터: 최성학상임이사, 황원래이사장, 배삼영위원장, 전영일 수석상임이사)

 

--------- 이하 발췌자료 ---------------------

    [제2차 토론회]

사무직-금융직 비정규 조직화 사업의 현주소 그리고 방향!

3) 농협중앙회비정규지부

농협중앙회는 농업협동조합법이 정하고 있는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의 향상과 농업의 경쟁력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목적을 구체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농민들의 협동조합 조직이다.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과 농민조합원들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하는 교육지원 사업, 농․축산물의 생산․유통․가공․소비를 지원하고 수행하는 경제 사업, 농협의 자금과 수익확보, 농업 금융서비스 제공을 위한 신용 사업을 하고 있다.

 

농협중앙회 사무소는 2007년 말 기준으로 중앙본부를 비롯하여, 16개의 지역본부, 156의 시군지부, 900개의 지점 및 출장소, 28개의 경제사업장, 50개의 교육원․해외사무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협중앙회의 임직원은 농협중앙회에 직접 고용된 비정규직 5천500여명, 무기계약직 2천100여명을 포함하여 2만1천866여명이다.

 

농협중앙회의 비정규직 현황은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이 80명, 보험사고처리심사, 어음교환 등 특수직이 340명, 서무업무 및 비서업무를 수행하는 종합직이 440명, 경제사업장에서 생산, 구매, 판매 관련업무를 담당하는 경제지원직이 420명, 금융점포에서 빠른창구업무를 담당하는 금융텔러직 690명, 보험텔레마케팅과 상담전화 수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금융상담직이 240명, 경제사업장과 신용사업장 전반에 걸쳐 영업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영업지원직이 2800여명, 산전후대체직이 150명, 사무업무를 보조하는 사무지원직이 228명이다.

 

비정규직의 근속기간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10여년이며, 1999년 2월 비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수도 상당수 존재한다.

 

농협중앙회비정규지부는 2001년 6월30일 설립됐으며, 조합원은 200여명이다. 조합원은 전국에 걸쳐 산재되어 있으며, 전 직종의 비정규직이 조합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조합원 가입범위는 정규직 3급이상 직원, 별정직(무기계약직) 및 비정규직이다.

 

농협중앙회 정규직노조의 상급단체는 한국노총 금융산업노동조합이며, 구 축협중앙회 출신의 정규직노조인 'NH농협중앙회노조' 역시 정규직노조로 존재하고 있으나 민주노총 산하이다. 농협중앙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복지수준은 표3과 같다.

[표 2-3] 농협중앙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과 복지 비교

임 금

복 지

- 3년차 근무자 연 1,500만원

- 대출지원․의료지지원 안 됨

- 산전후휴가시 대체인력지원 안 함

- 경조금과 법정휴가 외 별다른 복지혜택 없음

- 3년차 근무자 연 4,000만원

- 학자금․주택자금 대출

- 의료비지원(1,000만원까지)

- 산전후 휴가시 대체인력 지원

- 기타 은행권에서 시행하는 모든 복지혜택 적용

 

 

가) 노동조합 설립 계기

 

1999년 2월 농협중앙회가 IMF 경제위기를 이유로 기능서무직 및 부부사원 3,500여명을 정리해고하였다. 그리고 농협중앙회는 정리해고된 이들 중 1,500여명을 해고와 동시에 비정규직으로 재채용한다. 재채용된 1,500여명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바뀐 것이다.

 

농협중앙회는 1999년 비정규직이 된 1,500여명에 대해 계약기간 3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하였다. 정규직에서 한순간에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던 비정규직은 다가오는 계약기간에 불안감이 높아져갔다. 이에 따라, 2001년 6월30일 정규직(3급)과 비정규직 2,000여명이 고용불안과 차별적 처우 해소를 위해 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설립하였으나 사측에서는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정부 역시 노동조합 설립 신고를 2차례에 걸쳐 반려하는 등 설립과정에 어려움이 있었다.

 

나) 노사 갈등 양상과 문제해결 과정

 

2001년 노동조합 결성 당시 정규직노조와 사측은 동시에 노조에 대한 공격을 가하였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당시 위원장(김창권)의 조합원 자격을 문제 삼아 행정소송 등을 진행하였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노동조합은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노동조합의 투쟁은 노동조합 인정을 위한 투쟁에 집중되었다. 농협중앙회 회장 사택 앞을 비롯해, 국제협동조합연맹 총회 앞 집회 등을 전개하며 노동조합 인정을 위한 투쟁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결국 2002년 사측의 소송 취하, 2003년 전임자 1명과 사무실 확보, 2004년 단체협약 체결 등을 통해 노동조합이 유지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2004년에는 농협중앙회 노사관계 역사상 최초의 총파업투쟁이 2달간 진행되었다. 2004년 11월과 2005년 2월 각 각 187명과 250명의 집단해고가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2004년 11월9일 여의도 공원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진행한 후 파업투쟁에 돌입한 것이다.

파업 6일차에는 농협중앙회 본관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당시 위원장(이충호)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으며, 위원장의 입원 이후 당시 집행부 전원이 단식에 돌입하는 등 고용안정을 쟁취하기 위한 무기한 파업을 진행하였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파업대오의 이탈과 집행부 내부 갈등이 초래되면서 투쟁동력은 약해졌으며, 이와 함께 당시 상급단체이자 교섭권을 가지고 있었던 한국노총 공공연맹에서 12월10일 노동조합의 동의 없는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파업은 종료되었다. 당시 합의 내용은 금융텔러직은 해고 후 재채용, 특수업무직은 계약기간 2년 연장이었다.

 

2007년 6월30일 농협중앙회는 특수업무직 633명을 시작으로 2008년 3월까지 비정규직 2,100여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였다. 무기계약직으로 고용기간을 연장한 것이다. 그러나 임금이나 복리후생은 비정규직이었을 때와 차이가 없었다.

이와 함께,무기계약직을 사측에서 정규직으로 구분하면서 일방적으로 조합비를 미공제 하는 등 무기계약직 전환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은 초기업별 노동조합으로 조직형태를 전환하고, 동시에 기자회견과 법적 소송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는 한편, 임단협에서 지속적으로 무기계약직의 고용조건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제기를 해 나갔다.

하지만 조합원 지위를 놓고 사측과 분쟁이 발생하면서 대다수의 무기계약직 조합원들이 정규직노조에 가입하거나, 아예 노조를 탈퇴함에 따라 조합원 수는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2007년 들어 농협중앙회 사측에서는 지속적으로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무기계약직에 대한 조합원 지위를 부정하면서 조합비를 공제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계약직들의 계약기간을 빌미로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들에게 탈퇴를 종용하는 것이다.

실제 2007년 3월부터 수백명의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가입서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합비를 미공제하거나, 조합탈퇴를 종용당해 조합원의 수가 대폭 감소하였다. 또한 2008년 2월에는 노동조합위원장을 계약기간이 만료되었음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해고하기도 하였다.

 

노동조합은 사측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사측의 교섭회피 등으로 인해 해결이 되지 않았으며, 6월 말부터 본관 앞 노숙농성 및 선전전, 본관로비안 1인 시위등을 진행하였다. 이에 대해, 사측은 시설물 퇴거요청 등 으로 맞서며, 시종일관 문제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노동조합 위원장은 7월11일 본관외벽에 밧줄을 타고 오르는 고공농성에 돌입했으며, 고공농성 돌입 9시간 만에 사측과 위원장 복직, 무기계약직 조합원 인정, 성실교섭 이행에 합의하면서 고공농성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비정규직 투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직까지 사측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관련한 계획이 없는 상황이며, 현재 전국에서 해고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임금수준 역시 열악하다. 월 100만원 미만의 저임금 비정규직이 대부분이다.

 

다) 노사 갈등의 쟁점과 평가

 

2009년 현재까지 농협중앙회는 특수업무직, 경제지원직, 금융텔러직 등 2,100여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였다. 이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을 창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나, 고용안정 이외의 노동조건은 비정규직과 다를 것이 없다.

1차적으로 비정규직 당시와 비교해 임금이 달라지지 않았으며, 복리후생역시 비정규직과 다를 것이 없다. 이와 같은 점을 감안하면,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단지 대외적인 홍보를 위한 이벤트였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필요한 인력을 저임금으로 지속적으로 착취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은 비정규직법을 악용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농협중앙회는 비정규직의 근로계약서에 2007년 7월1일 이후 “고용기간은 2년을 초과할 수 없다”는 문구를 삽입하였다. 심지어 비정규법 시행전 에 만들어진 농협중앙회 자체규정인 '5년 고용연한제'와 '비정규직법 상의 2년' 중 먼저 도래하는 계약기간 종료시점에 비정규직을 해고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실제 현재 해고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2007년 7월1일자로 비정규직 전원이 체결한 근로계약에 대해서는 제도개편(최장근로기간 종전 5년에서 2년으로 변경 등)에 따른 것이므로 비정규직법의 정규직전환 근로기간인 2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정규직 전환을 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9년간 노동조합은 비정규직노동조합으로서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차별철폐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노동조합전임자와 사무실을 확보했으며, 사측과 지속적으로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사측이 노동조합과의 합의로 무기계약직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노동조합이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투쟁함으로써 2,100여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 역시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활동에는 한계 역시 많다. 단일 사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국 1,200여개의 사무소에 조합원들이 분산되어 있어 노동조합으로서의 조직이 어렵다는 점은 활동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실제 5,500여명의 비정규직 중 200여명 정도의 조합원 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조합장들과 중앙회 임원들의 친인척들이 비정규직으로 주로 채용되면서 실제 해고를 당하거나 불이익한 처우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한 항의나 투쟁력으로 모아지지 않는 것도 노동조합 활동의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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